자료/교육및강의 2009. 12. 2. 20:19
[기고]‘대학 평가’와 대학다움 이명학 성균관대 사범대 학장

최근 국내외 몇몇 언론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학 평가’는 구태의연하게 지내온 대학의 체질을 개선하고 변화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평가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일희일비하는 대학 구성원, 동문, 학부모를 보는 마음은 씁쓸하다. 물론 대학의 경영 성과를 측정할 마땅한 지표가 없는 마당에, 언론사의 평가가 대학에 대한 사회적 평판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평가 결과에 초연할 수 없는 것도 수긍은 간다. 그렇다고 언론사의 일방적인 평가 지표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과 추종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특히 여러 긍정적인 지표에도 불구하고 ‘영어강의 비율’과 ‘외국인 학생 비율’ 등 이른바 국제화 지표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요 즈음 각 대학에서 경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국제화 프로그램을 보면, 교육 목표가 무엇인지 의아할 때가 있다. 영어 강의도 교육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영어를 잘하게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심화된 전공을 가르치기 위해서인가. 영어를 잘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영어 강의를 할 것이 아니라 영어회화 강의를 수준별로 다양하게 개설해 주면 될 것이다.

심화된 전공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면 그 교육효과를 따져 가며 좀 더 신중한 방법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A교수가 담당과목을 두 반으로 나누어 하나는 영어로, 다른 반은 한국어로 진행한 다음 한 학기가 지나 두 반의 성취도를 분석해 진정으로 영어 강의가 의미가 있었다면 영어 강의를 확대 시행하면 될 것이다. 만약 그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영어 강의가 필요한 전공에 국한해 시행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정과 논의도 거치지 않고 언론의 ‘평가 지표’에 맞추어 경쟁적으로 영어 강의를 개설하고, 학생들의 만족도와 효과에 대한 조사도 없이 양적으로 영어 강의 수만 늘려가고 있다. 어떤 분들은 외국인 학생을 위해 영어 강의를 반드시 개설해야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전공이 제대로 된 영어 교재가 없는데 강의만 영어로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각 대학은 ‘외국인 학생’ 비율을 높이고자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외국인 학생이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갖추었는지 따져보는 게 아니라 최소 입학기준만 마련해 놓고 입학시키고 있다. 말도 더듬거리고, 무슨 말인지 몇 번을 읽어야 아는 언어능력으로 어떻게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외국인 학생 비율을 높이려면 이런 학생조차 입학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차라리 ‘한국어 능력시험’ 급수별로 가중치를 두어 질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많이 확보한 대학에 가산점을 주는 게 합리적인 방법일 것이다.

언론기관이 시행하는 대학 평가의 궁극적인 목표가 외형적인 발전이 아니라 내실 있는 변화와 발전이라면, 이제라도 대학 구성원들의 합리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학도 문제가 드러난 평가 지표에 대해 언론사들과 개선방향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대학다운 자세이자 태도다.

<이명학 성균관대 사범대 학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2011805465&code=990304
posted by wizys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