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교육및강의 2010. 1. 21. 01:09
<포럼>
KAIST ‘교육 수출’과 대학 경쟁력



남이 만든 지식으로 물건만을 만들어 팔아서는 영원히 일류 국가가 될 수 없다. 지식을 스스로 만들어 수출할 수 있어야 일류 국가인 것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덴마크에 이르기까지 산업혁명 이후의 대다수 크고작은 유럽 국가가 그러했다.

카이스트(KAIST)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칼리파과학기술연구대학(KUSTAR)에 교육연구 노하우를 제공하기로 했다한다. 대학 지식 수출의 예로서 신선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지닌 국가라면 이미 진작 있었어야 할 사건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대학교육 재정은 국내총생산(GDP)의 0.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정도다. 이렇듯 열악한 재정 환경에서도 대학 진학 대상 인구의 80% 이상을 교육시키고 있으니, 한국 대학교육 시스템이 지니고 있는 나름의 효율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지식사회의 주역이 되기에 한국의 대학교육 시스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식을 만드는 대표적인 기관이 대학이다. 특히 전체 박사 인력의 70%가 대학에 몰려 있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교육정책에 있어 대학은 투자 대상이라기보다 규제 대상이다. 30조 원이 넘는 교육재정의 3분의 2 이상은 지방재정교부금으로 배정되고, 이 교부금은 대체로 초·중등교육을 위해 사용된다. 반면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적다. 2009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초·중등학생 1인당 각각 5638달러와 7343달러를 지출한 데 비해 대학생에 대해서는 7706달러와 1만2326달러를 지출했다.

이른바 ‘3불정책’이 대학 관련 정책 의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사교육비와 입시 문제는 그 자체를 규제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수천만원의 사교육비를 들여 일류 대학에 보냈는데 졸업 후 취직도 못 하고, 다른 집 아이는 일류 대학에 못 갔는데도 무엇을 전공했는지 취업도 잘하고 돈을 잘 벌더라’ 하는 인식이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 퍼졌을 때에나 없어질 수 있다. 그리고 대학의 재정 문제도 기여입학제나 대학등록금 인상의 논란 차원보다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 사이의 자원 배분 조정 맥락에서 우선 다뤄져야 한다. 초등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 축소에 조 단위의 재원이 배정되고, BK21사업에 그의 수십 분의 일이 배정되는 식의 재원 배분은 지식사회에 합당한 정책 우선순위가 아니다.

정책 및 제도 개혁과 더불어 대학도 인력관리·조직관리 등의 측면에서 스스로를 개혁하고 전략적으로 지식사업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대학교육은 ‘교육’이자 동시에 ‘산업’이다. 예를 들어 지식을 효율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큰 부가가치를 남기는 일이다. 대학생의 30%를 유학생으로 채우고 있는 호주는 고등교육을 통해서 광물과 공산품을 수출하는 만큼의 돈을 번다. 아울러 대학은 산·학 협력과 관·학 협력을 통한 지식 이전을 통해서도 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는 들여온 지식을 씨앗삼아 대한민국산 지식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취약하다. 선진 제국으로부터의 지식 이전을 부지런히 추구하되, 한국 고등교육 스스로의 지식 생산 및 분배 모형을 갖춰야 한다. 노벨상 받을 만한 인재를 스스로 길러내지 못하는 지식 일류 국가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 지식사회를 살고 있음에도 대학에 대한 한국의 투자 우선순위는 ‘조국 근대화’ 시절로부터 크게 변하지 않았고, ‘보따리장수’식의 지식 생산 모형도 여전하다. 지식 일류 국가의 길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다.

[[최흥석 / 고려대 교수·행정학]]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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