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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5 :: [펌] 목적이 이끄는 삶
[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꿈을 좇는 사람들에게 심형래의 삶은 희망의 이정표
[중앙일보] 2007-08-14 05:22

혼자서 중얼거리며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청년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군거려도 도무지 개의치 않는다. 날씨와 관계없이 그는 분주하다. 정상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던 그가 시인으로 밝혀진 건 한참 후의 일이다. 그는 거리의 나무, 벤치, 자동차, 심지어 신호등에까지 말을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종종 오해를 받는다.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바보, 혹은 머리가 약간 돈 사람이 아니었다는 게 사실로 확인된다. 미쳐야(狂) 미친다(及)는 건 오늘도 맞는 말이다.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고 박수를 쳐대는 시점도 대체로 이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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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감독이 만든 영화 ‘디 워’의 흥행몰이가 거침없다. 극장을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은 소문대로 두 부류. ‘대단하다’ 혹은 ‘엉성하다’. 그래도 줄은 여전히 길게 이어지는 걸 보면서 떠오르는 그림 역시 두 갈래다. 그 남자(심형래)의 웃는 얼굴, 그리고 우는 표정.

  오랫동안 그는 대한민국 바보 연기의 달인이었다. 1970년대 인기드라마 ‘여로’의 주인공을 차용한 ‘영구 없~다’ 에피소드는 지금도 후배 개그맨들에 의해 반복 학습되는 중이다. ‘동물의 왕국’의 모든 동물이 잊혀도 뒤뚱거리며 걷던 ‘심형래 펭귄’의 이미지는 독하게 남아 있다. ‘변방의 북소리’가 코미디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것도 넘어지고 엎어지던 ‘심형래 포졸’의 전적이다.

본 인은 부인하지만 초창기 그의 영화감독 행각(?)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연장선이었다. 고작해야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노리는 수작, 혹은 수준이었다. 맛깔, 때깔, 색깔 두루 어설펐다. 그러나 그의 속내에 웅크리고 있는 성깔만큼은 결코 무디지 않았음을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영화감독 심형래에게는 웃음을 뛰어넘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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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보를 위해 토크쇼에 나와 쏟아내는 말을 들어보면 그는 여전히 탁월한 코미디언이다. 같은 말을 해도 그가 하면 웃긴다. 스토리텔링의 고수답다. 무게는 아예 잡으려 하지 않지만 무게감이 없는 건 아니다. 무거운 건 애초부터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다. 심형래의 근거 있는 낙관은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쌓은 견고한 퇴적물로 보인다. 영화 ‘디 워’를 완성하기까지 그의 삶 자체가 전쟁이었다. 적들은 곳곳에 매복해 있었다. 코미디언의 삶이 코미디적일 필요는 굳이 없는데 그는 필요 이상 무시당해 왔다. 다수의 네티즌이 그를 감싸고도는 걸 보면 역시 시비지심보다는 측은지심 쪽이 더 힘센 듯하다.

8 월 둘째 주 ‘MBC 백분토론’의 주제는 ‘디 워 과연 한국영화의 희망인가’였다. 한 편의 영화를 둘러싸고 100분 동안 토론을 벌이는 것도 유례없는 일이다. 영화가 희망인지, 절망인지는 종잡을 수 없으나 심형래가 걸어온 삶의 지도만큼은 지금도 북극성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시(詩)이자 이정표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전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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