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09. 8. 3. 00:30

과학으로 창조하는 분자요리 (Molecular Cuisine)

이동호    
2007-11-19    



   1. 분자요리란?
   2. 분자요리 조리방법 및 특징
      2.1 분자요리의 조리방법
      2.2 분자요리에만 쓰이는 도구들
      2.3 분자요리의 특징
   3. 분자요리 에피소드
      3.1 분자요리와 관련된 말.말.말…
      3.2 분자요리의 세계화
   4. 분자요리의 대가소개
      4.1 슈밍화
      4.2 Restaurant Magazine 선정 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 분자요리는 요리의 혁신인가? 아니면 일시적 유행일까?




분자요리(molecular cuisine 혹은 molecular gastronomy)란 모든 조리과정 중에 생기는 화학, 물리적인 현상을 완벽하게 파악한 뒤 그것을 이용해서 좀 더 예술적인 형태로 요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조리법이다. 예를 들어, 알코올 도수가 높은 럼이나, 꼬냑 등을 액상질소에 넣어 얼린 후 화려한 모양으로 제공하며, 크림이나 과일즙으로 코팅하여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식이다. 이는 얼음을 통해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며, 알코올은 얼릴 수 없다는 일반적인 상식도 깰 수 있게 한다.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술적 맛과 모양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쾌락을 주게 된다. 아래 사진처럼 사과의 원액을 이용해서 캐비어 모양을 만들어 먹으면 톡톡 터진다. 이처럼 마치 캐비어를 먹는 느낌을 연출한다던가, 오이를 이용해서 구름모양의 거품을 만드는 방법이 분자요리법이다.

미국에서는 ‘음식과학(food science)이라고도 불리는 분자요리는 ‘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분자요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는 1980년대 후반에 프랑스의 화학자 에르베 티스(HerveThis)와 천재 셰프(chef) 삐에르 가녜르(Pierre Gagnaire)가 만나서 시작한 기법이다. 이들은 새로운 조리법과 조리기구를 개발했는데, 예를 들면 액체 질소(액체 질소는 -196°까지 내려간다), 당도를 측정할 목적으로 블로 토르쉐(blow torche), 그리고 굴절계(refractometer), PH meter 등 화학실험도구를 요리에 접목시켰다.

그 이후 1990년대에는 영국 과학자인 니콜라스 커티스(Nicholas Kurtis)와 헤스턴 블루멘탈(Heston Blumenthal)이 맛의 상호 보완적 요소에 대한 연구를 했다. 하지만 이런 분자를 이용한 요리법을 처음으로 요리하는데 적용한 사람은 스페인의 ‘다니 가르시아’(Dani Garcia)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한 분자조리가 발전하며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을 사로잡는 최첨단 요리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스페인의 경우 국가적으로 분자조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유럽에서 요리산업의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겨냥한 정책이다. 관광과 요리산업을 발전시켜 국가경쟁력을 키우고자 하는 의도인데 세계 10대 레스토랑 중 3곳이나 스페인에서 차지한 것은 이런 성과물로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 ‘요리=스페인’ 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생길 지 사뭇 궁금해진다.

2. 분자요리 속으로

2.1 분자요리의 조리방법

분자요리법의 예를 살펴보자. 분자요리 조리 과정은 마치 과학실험과 같다. 캐비어를 만드는 과정 중 일부를 살펴보자. 아래 사진을 보면 스포이드 끝에서 황금 빛 액체가 투명한 유리컵 속으로 떨어진다. 황금빛 액체는 물에 꿀과 알긴산(alginic acid)를 섞은 것이고, 컵에 담긴 것은 물에 칼슘을 녹인 용해액이다. 황금빛 액체는 동그란 모양으로 유리컵 바닥에 천천히 가라앉았다. 뜰채 위로 유리컵에 담긴 내용물을 쏟아 부으면 투명한 액체는 거름망을 통과해 사라졌지만, 개구리알처럼 생긴 황금빛 구형(球形)은 걸려 남았다. 어느 순간 액체가 고체로 변한 것이다. 이는 “알긴산과 칼슘이 만나면 알긴산이 고체로 변하는 화학적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어느덧 방울모양의 형태를 갖춘 액체가 생겼다. 이는 분자요리에서 자주 사용하는 테크닉 중 하나인데 이와 같이 각 분자의 물질에서의 반응을 이용해서 조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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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초콜릿에 보기 싫은 흰색 가루가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 블루밍 현상에 대한 연구 결과와 마찬가지로, 액체상의 증가는 성분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서도 블루밍 현상을 가속화한다. (...) 초콜릿의 향과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려면 저온(예를 들어 14℃)에서 보관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장에 따른 분자의 이동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초콜릿 맛을 시식하기 전에 한 번 데우면 그 초콜릿의 완벽한 맛을 되살릴 수 있다. (152~153쪽 '초콜릿의 블루밍 현상' 중)

요리계의 과학수사대 'Cook Scene Investicator'발견?! 

냄비와 시험관

냄비와 시험관 - 8점
에르베 디스 지음, 권수경 옮김/한승


2007년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전면 컬러 인쇄 도서. 판형은 약간 크다. 펴면 백과사전을 펼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 자 에르베 디스는 전세계의 요리사들에게는 꽤 유명한 존재로 '분자미식학(molecular gastronomy)'의 대가라고 일컬어진다. 분자미식학 외에도 분자요리라는 게 있는데, 요리에 화학, 물리학 등을 접목시켜 정확한 계량과 실험 등을 통해 맛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말한다.

한국에도 청담동에 '분자요리 1호점'이 들어서 있고, 롯데호텔은 오는 10월 분자조리사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을 개점한다고 한다. 네이버를 검색하면 '분자요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죠?'라고 묻는 고등학생과, 이에 대해 어디어디로 유학가라는 등의 설명을 하는 친절한 답변도 두어 개 달려 있다. 요리계에서 분자미식학은 꽤 트렌드인 셈이다.

□ 책으로 놀자 : 요리의 비밀을 과학수사하자 (원본보기 클릭)

그렇다고 분자미식 입문서인 이 책이, 반드시 요리 전문가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과학을 쉽게 풀어 쓴 교양서 중에서도 '요리'라는 일상생활에 감각적으로 접목시켰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맛있는 음식이야 좋아하지만, 요리에도 과학에도 매니아가 아닌 탓에 '있는 대로 먹는' 독자에게도, 괜찮은 책이다. 

<요리와 과학>도 집필한 저자는, <냄비와 시험관>에서 보다 일반적인 독자를 가정하고 분자미식학을 설명했다. 분자미식학이란 것에 대한 정의부터, 어떻게 쓰이는지, 미래의 가능성은 뭔지 등을 두 쪽짜리 칼럼 100여편에 나눠 맛깔스럽게 담았다.

첫번째 장은 요리에 얽힌 각종 속설들을 실험으로 검증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요리책에는 "스테이크를 굽기 전에 소금을 뿌려라"/"구운 후에 소금을 뿌려라"같은 상반된 비법들이 적혀있다. 과연 어떤 것이 맞는 비법일까? 어째서 가능한 걸까? 기타 등등. 흥미진진한 해부와 실험과 해답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요리계의 CSI(과학수사대. Cook Scene Investigater)라고 해도 좋겠다.

전자센서 숟가락에서 재구성된 음식물까지. 요리과학 바쁘다 바빠

<먼 나라 이웃나라>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하면 '먹을 것'부터 생각난다. 이 나라의 미식은 포도주와 함께 꽤 많이 알려져 있다. 프랑스 저자가 쓴 이 책은 전반적으로 서양 요리, 그 중에서도 프랑스 요리에 치중해 흘러간다. 빵부터 뇨키, 크넬,  퐁뒤, 수플레, 퓌레, 사바용 무스 등, 기타름만 들어도 휘황찬란한 요리들이 현미경 아래 분석된다.

가끔 일본 요리가 일본 논문들과 함께 등장하고 중국 요리도 간간히 언급되지만, 한국 요리가 없는 점은 아쉽다. 저자를 직접 방문한 한국 요리사의 후기에 따르면 (2BcHeF 투비쉐프 클럽. http://club.cyworld.com/506011921825/157922291) 저자는 "이미 분자미식학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자센서가 달린 숟가락'을 넘어 저쪽은 벌써 '재구성된 음식물'의 미래를 논하고 있다.

책을 덮고나면, 과자 봉지 뒤의 '함유성분' 등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분자미식학이 반드시 '과학적인 요리'를 위해서만 기능하는 건 아니다. 이는 요리나 식용제품의 마케팅에도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한 분야. 김치와 비빔밥, 고추장 등. 우리 음식에도 '요리'와 '물리화학'이라는 새롭고 매력적인 결합을 '어머니 손맛'과 더불어 활용해보는 게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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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원초적 조리이론의 회귀본능 - ‘분자조리’  <제 264호>
관리자기자, foodbank@foodbank.co.kr, 2007-06-07 오전 02:34:12



오 징어 먹물로 만든 블랙 젤리, 감초향의 밤 벨루테, 만잘리나 와인향의 순무 수프. 유럽 전통 음식이 되었건 첨단의 퓨전 메뉴가 되었건, 요리 좀 먹어보고 레스토랑 좀 가봤다는 사람들조차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게 만드는 생소한 메뉴들이다. 2007년 1월 대한민국의 미식가들을 행복한 쾌락의 도가니로 몰았던, 호텔 및 외식업계를 제법 들뜨게 만들었던 최고의 화두, 바로 프랑스 초일류 요리사 삐에르 갸네흐(Pierre Gagnaire)의 내한 프로모션 중 제공된 메뉴의 일부였다.

조금 속된 표현으로 ‘주방장 맘이다’란 말이 있다. 무책임하고 되는대로 해보겠다는 무성의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 주방에서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표현이야 말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극명하게 해주며 요리사의 숨은 비법을 포함한 함축된 말이라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요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등장하는 레시피의 해석과 노하우는 요리를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형태로 표현된다. 아무리 같은 요리를 같은 방법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맛으로 나타나는 게 요리의 세계, ‘맛’의 세계라 아니할 수 없고, 그래서 요리는 창작의 고통을 동반하는 예술의 가치로 인정받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국 요리를 배운다는 것은 체계도 없고 매뉴얼도 없는 ‘주방장식’ 노하우의 전수가 전부일까? 그렇지는 않다. 모든 조리과정 중에 나타나고 경험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현상들의 연속이다. 또한 과학적 이론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 찬사를 받는, 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임을 자부하는 소위 스타 레스토랑의 쉐프들이 최근 주장하기 시작하는 새로운 조리법의 접근방식이 있으니 바로 ‘분자조리(Molecular Cuisine)’ 혹은 ‘분자미식학(Molecular Gastronomy)’이다.

음식재료와 조리과정을 과학적으로 재 분석하여 새로운 맛과 질감을 개발하는 요리법, 음식재료의 맛 성분을 분자 단위로 분석하여 예상 밖의 새로운 요리법을 발견하는 것 등으로 부연설명이 뒤 따르는 이 방식은 2006년 세계 50대 레스토랑의 1, 2, 3위를 차지한 스페인의 엘불리(El Bulli)와 영국의 팻덕(Fat Duck)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삐에르 갸네흐의 레스토랑 등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면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조리업계의 이슈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분자 미식학’, ‘분자 조리’가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근래의 일은 아니다. 처음 분자미식학의 기틀을 세웠다고 알려진 사람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에르베 디스 교수이며 그는 물리나 화학 원리를 응용, 음식재료의 성분이나 조리과정을 분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그와 수년 간 함께 작업을 하며 분자조리를 실제 요리에 적용해 온 요리사가 바로 삐에르 갸네흐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를 과감히 섞어서 독창적 조리과정을 창조해 내는 그의 방식은 최근 자신의 요리가 ‘분자조리’란 말로 대변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이 분야 요리사의 시조임을 보여주고 있다. 계란 흰자를 65℃로 일정하게 가열하여 만들어내는 투명한 흰자 젤리는 삐에르 갸네흐의 특허품이 되어버렸다.

이후 영국의 니콜라스 커르티 교수와 허브 티스 교수의 활발한 연구와 노력으로 분자미식학은 대학에서도 정규 강좌가 개설되었으며 조리란 결국 분자나 분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변화를 컨트롤하는 과학의 일부라는 평범한 논리가 성립되었다.
세계 50대 레스토랑의 1, 2 위도 ‘분자조리’로 유명세
서두에 말한 것처럼 최근 분자 조리가 유명해 지기 시작한 것은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이 이 분자 조리 방식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2006년 집계에서 1위를 차지한 스페인의 엘 불리로 가보자.
바르셀로나에서 북으로 160km 떨어진 산자락에 있는 이 자그마한 식당이 몇 년씩이나 세계 미식가들의 예약으로 넘쳐나는 것은 단지 이 식당의 영업일 수가 일년 중 절반 이라는 것, 하루 식사 인원이 겨우 50명이라는 것 외에도 조리장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의 요리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고집, 병적인 연구 본능, 창조적 시도 등이 이유 일 것이다. 실제 연간 10만 명의 예약이 들어오지만 8000명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니 그야말로 ‘선착순’의 혈전이 아닐 수 없다.

그는 6개월의 영업을 마치면 연구소에서 음식 연구와 개발에 몰두한다고 한다. 20~30개까지 이어지는 그의 코스 요리는 최소량 즉, 한입 크기로 각 접시에 담겨 나오고 이러한 전략이 각각의 메뉴의 교유한 특성과 차별점을 최상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의 요리 재료에는 흔히들 쓰는 음식재료 뿐만 아니라 숯이나 담배 잎, 동물 내장 같은 것들도 자주 등장하는데, 먹는 방법과 순서를 제대로 따르면 그의 요리 맛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한 마술과도 같은 맛과 향을 전하게 되며 또한 시험관, 풍선, 거품 등 특이한 소재를 거침없이 식탁 위로 등장시켜 손님들을 놀라게 한다고 한다. 실제 그의 음식들을 보고 있으면 먹어도 되는 것인지, 요리인지, 공예품인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번째는 ‘미식’ 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던 영국의 더 팻덕이다.

헤스톤 블루멘탈(Heston Blumenthal)이 총지휘를 맡고 있으며 그에 의해 단순히 결과물에 집중하던 흐름에서 요리를 완성해 가는 과정과 원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자 미식학의 메커니즘이 정립되었다는 평이다. 팻덕은 2005년에는 1위를 차지했을 만큼 실로 엘 불리와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레스토랑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리요리가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정어리향 셔벗, 망고와 미송 퓌레 등이 유명하다. 포장이나 그림에서 뿐만 아니라 요리를 접시에 담고 소스를 장식할 때도 트레이드 마크인 오리발과 깃털을 그려 넣어 보는 즐거움을 더하기도 한다.
분자조리의 개념을 일반적인 논리로 설명한 어느 교수의 표현처럼 이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애초에 요리를 만들기 위해 접하고 거쳐야 했던 화학적, 물리학적 반응과 변화,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물 속에 그 해답이 숨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고의 경지에 이른 스타 쉐프들, 그들이 산고의 고통과도 같은 혹독한 창조의 고뇌 속에서 선택한 것은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보자는 ‘초심’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2007-06-07 오전 02:34:12 (c) Foodba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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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어가 된 장미, 거품이 된 오이

음식의 맛·향 유지하며 전혀 다른 모양과 질감에 미식가 유혹

"알긴산 농도가 왜 이렇게 묽어?" "주사기 더 큰 걸로 가져와"

화학 실험실에서 서투른 조교를 혼내는 노교수의 목소리가 아니다. 스테이크로 압구정동을 평정한 '테이스티 블루바드'의 조리실에서 나는 소리다. 수석 쉐프가 주사기 안에 집어 넣은 장미 소스를 칼슘 용액이 담긴 통에 방울방울 떨어뜨린다. 장미 소스 방울은 그 자리에서 굳어 곧 캐비어로 변신한다. 장미 소스로 만들어진 가짜 캐비어는 그릴에 살짝 구운 바닷 가재 위에 곱게 세팅 된다.

나머지 살점들 위에는 각각 젤리와 거품이 올려졌다. 어떤 것은 입에서 사르르 녹고, 어떤 것은 톡톡 터지지만 모두 장미 소스로 만들어졌으니 같은 맛과 향이 난다. 한 가지 재료를 가지고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전혀 다른 모양과 질감으로 표현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분자 요리다.

정어리로 만든 셔벗, 망고로 만든 계란 프라이

분자 요리는 참 재미있다. 틀림없이 맥주인 줄 알고 마셨는데 요구르트고, 성게 알을 먹었는데 석류 맛이 난다. 파스타 면인 줄 알았는데 파마산 치즈고, 가루를 입에 털어 넣었는데 딸기 아이스크림이다. 분자 요리를 젊은 여성 고객에게 내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십중팔구 "어머나" 소리와 함께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 같은 기막힌 환골탈태의 원동력은 과학의 힘이다. 그 시작도 요리사가 아닌 프랑스의 한 화학자로부터 였다. 물론 모든 요리에는 과학의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분자 요리에만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실례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소금의 삼투압을 이용해 육즙을 가두는 것이나 김치의 발효, 빵의 부풀음에 모두 과학이 숨어 있다. 하지만 분자 요리의 과학은 조금 특별하다. 아니 유별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이제껏 해왔던 썰기, 굽기, 튀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더 새로운 것이 없을까' 하는 목마름 가운데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급속 냉각이라든지 응고, 겔(gel)화 등 주방보다는 실험실에서 더 자주 쓰일 법한 기법들이 등장했다. 음식의 온도와 양에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레시틴, 알긴산, 질소 가스 등 생소한 재료들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렇게 기묘하고 골치 아픈 방식을 통해 태어난 음식들은 그 형태나 질감이 기존의 상식을 뒤엎을 만큼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식탁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을 하나 더 늘려주었다.

정어리로 만든 셔벗이나 망고로 만든 계란 프라이를 생각해 보라.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공략하기 위해 데이트에서 무슨 이야기를 준비할까 고민하는 남자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요리들을 보고 먼저 입을 열지 않는 여자는 없을 테니까.

분자 요리, 배부른 사람들의 사치?

분자 요리의 시작은 프랑스였지만 대중화 시킨 것은 스페인이다. 새로운 조리 기법에 개방적인 스페인 사람들은 늘 먹던 음식도 어떻게 다르게 먹어볼까를 구상했고 이런 고민은 '엘불리'의 천재 요리사인 페란 아드리아를 낳았다.

콧대 높은 미식가들을 "예약만 돼도 행복하다"며 겸손하게 만든 레스토랑 '엘불리'는 현재 분자 조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대두 레시틴으로 거품 내기, 액화 질소를 사용해 영하 196℃에서 순식간에 얼리기 등의 기법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

물론 이 분자 조리 기법을 사용하는 곳은 많지 않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뭔가 더 새로운 것을 향한 집착에서 태어난 기법인 만큼, 어지간히 배부르지 않고는 꿈도 꿀 수 없는 발상이다. 가령 푸아그라(살진 거위간)를 늘 먹던 대로 구워 먹지 않고 질소 가스를 주입시켜 가벼운 크림으로 만들어 먹을 생각을 했다면, 평소에 푸아그라를 질리도록 맛 본 사람이어야 한다.

때문에 현재 분자 조리 기법은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을 표방하는 일류 레스토랑에서만 사용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7년 세계 3대 레스토랑으로 뽑힌 스페인의 엘불리와 프랑스의 피에르 가니에르, 그리고 영국의 팻 덕이 모두 분자 조리 기법을 시행하는 곳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분자 요리와 한식이 만나면?

한국인들보다 새로운 것에 열광적인 사람들이 있을까? 지난 해 피에르 가니에르가 롯데 호텔에 한국 지점을 내면서 분자 요리를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흡사 마술 쇼를 보는 것처럼 환호했다. 어떻게 하면 분자 요리를 배울 수 있냐고 문의하는 초보 요리사들도 줄을 이었다. 하지만 베테랑 요리사들의 눈에는 웃지 못할 촌극이다.

"그냥 한식의 돌려 깎기 같은 거에요"

한 국내 정상급 쉐프는 분자 조리가 수많은 기법 중 하나일 뿐 음식의 종류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림으로 치면 수묵화나 유화가 아니라 파스텔이라는 말이다. 이것 없이도 얼마든지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다만, 전에 없이 화려하고 특이해 눈에 띄는 도구임에는 확실하다. 그렇다고 "파스텔을 사용하는 화가가 되고 싶어요"라는 꿈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슨 그림을 그릴 지 결정하는 것이 먼저고, 그 다음에 도구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니까. 세계의 요리 명장들이 '분자 조리 전문'이라는 타이틀에 유독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 요리에서 자신의 독창성과 그 안에 녹아 있는 연륜을 읽어주기를 바랐건만, 마치 한 가지 조리 기법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니 쉐프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레스토랑에서는 분자 조리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미식가들이 예쁘고 신기한 거품 소스에 익숙해지면서 소스를 액체 상태로 내는 것이 더 이상 '트렌디하지 않다'는 인식이 생기자, 인기 레스토랑이라고 자처하는 곳이라면 간단하게나마 분자 조리를 보여 준다.

시간이나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특히 모양이 예쁘기 때문에 디저트에 자주 활용된다. 동부 이촌동에 새로 문을 연 디저트 카페 '저스트 어 모먼트'에서는 프랑스 식의 밀?유나 스페인 식 토스트 등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하는 데 그 중 분자 조리 기법을 사용한 디저트도 있다.

몸에 좋은 7가지 재료를 일주일 간 숙성 시킨 에센스에 코코넛 무스, 석류 등을 담고 그 위에 탄산을 주입시킨 패션 프룻 폼을 얹었다. 이름은 디어 피에르(Dear Pierre). 분자 요리의 대가인 피에르 가니에르의 정찬을 먹고 감동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홍대에 문을 연 '피치 키친'에서도 디저트에만 분자 조리 기법을 살짝 선보이고 있다. 이전 분자 요리로 이름을 떨치다가 문을 닫은 '슈밍화' 출신의 쉐프가 볼 안에 든 가루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준다. 가격은 6000원.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분자 조리에 대해 넓게 해석하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이왕에 분자 요리의 의미가 '음식의 맛과 향은 유지하면서 전혀 다른 모양과 질감을 내는 것'이라면 굳이 질소나 알긴산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지난 1월 강남에 문을 연 '정식당'의 코스 중에는 '대지'라는 이름을 가진 요리가 있다. 버섯을 말려서 가루로 만든 것과 빵 가루, 흑미를 섞어서 흙을 표현하고 그 속에서 인삼 뿌리가 뻗어 나오는 모습인데 척 보기에는 영락 없이 흙 밭이다.

스페인에서 분자 요리를 접한 임정식 쉐프는 "분자 요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한식에 접목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흥미롭다. 일산의 한식당 '초록 바구니'에서는 김치 젤리와 된장국 겔, 당근 스펀지 등 한식의 재료에 분자 조리를 접목한 음식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쉽지 않다.

맵고 아삭한 김치를 기대한 손님들에게 김치 젤리를 내놓았을 때 처음부터 흔쾌히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때문에 현재는 가장 비싼 코스에서 가니쉬(곁들여 먹는 음식) 정도로만 보여주고 있다.

맛 있게, 예쁘게, 즐겁게 먹자

분자 요리를 집에서도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조금 힘들다. 거품을 내는 것 정도야 믹서를 이용해 쉽게 할 수 있지만 알긴산이라든지 액화 질소는 사용하면서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구하기도 어렵다. 거품을 낼 때 사용하는 레시틴에도 식품 첨가물이 있고 대두 추출물이 있는데 분자 조리에 쓰이는 것은 후자다.

이런 화학적 지식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못 먹을 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분자 요리를 한다고 전면에 내세우는 식당도 일단은 의심해 봐야 한다. 내공이 검증된 쉐프가 더 예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한다면 상관 없지만 초보 쉐프의 깜짝 쇼를 위한 것이라면 실망할 것이 뻔하다.

영국의 레스토랑 '팻 덕'에서는 매 코스마다 아이팟이 따라 나온다. 음식과 어울리는 음악을 함께 즐기라는 뜻이다. 맛은 기본이고 그 이상의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분자 요리는 파인 다이닝의 총아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그런 사람에게는 솜사탕 대신 설탕을 한 사발 퍼주는 것이 좋겠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한밤중에 냉장고를 열다~[2585 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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