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교육및강의 2010. 2. 27. 12:51

"대한민국은 좁다… 우리가 자웅 겨룰 대학은 MIT·스탠퍼드"

[대입 자율화, 대학 선진화 2년을 말한다] <5> 백 성 기 포스텍 총장

인터뷰=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정리=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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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포항공대)의 국내 라이벌 대학이 궁금했다. 서울대? 아니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백성기 포스텍 총장의 대답은 일종의 비전으로 읽혔다. "올림픽 본선에 나가서 (세계 유수의 대학과)경쟁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국체전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포스텍이 자웅을 겨뤄야 할 대학은 국내 대학이 아닌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 칼텍(캘리포니아공대), 스탠퍼드대 같은 세계 유명 대학들이라는 뜻이다. 그는 포스텍이 그럴 만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면서도 "좋은 경쟁력을 가졌다고 현실에 안주해선 안된다"며 자만을 경계하기도 했다. 최근 포스텍이 내놓아 교수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정년 심사 탈락 교수 퇴출 방안도 '백성기식 개혁'의 대표작이다. 2010학년도 입시에서 신입생 전원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뽑은 백 총장은 "이공 분야에 남다른 의지를 가진 잠재력 갖춘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었다"고 만족해 했다.

_최고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에다 교수 역량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교수들을 더욱 다그치고 있는 이유는 뭔가요.

"포스텍의 교수들이 국내 최고 집단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줄로 알고 있어요. 연구와 논문 발표 실적 등에서 볼 때 포스텍은 국내에서 가장 앞서가는 대학 중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국제 경쟁력이에요. 전국체전이 아닌 올림픽을 준비하자는 얘깁니다. 국제적인 잣대를 들이댔을 때 얼마나 경쟁력이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국내에서 어느 대학이 1위냐를 따져서는 발전이 없다고 봐요. 대한민국 교수 사회 전체가 함께 올라가야 의미가 있어요. 국내 수준이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향상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경쟁은 우물 안 개구리식에 불과해요."

_포스텍 교수들이 부족한 면이 적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교수 사회도 발전과 개혁의 여지가 많아요. 분명한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교수진을 갖추는 게 필요해요. 세계 수준에서 견주어 봤을 때 포스텍 교수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입니다."

_교수들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미진한가요.

"포스텍의 목표는 세계 20위권 대학 진입 입니다.(그는 세계 20위권 대학에 들면 미국 10위권 대학 수준은 너끈히 된다고 했다) 영향력을 키워는 것이 결국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판단해요. 사회와 학문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영향력이지요. 포스텍에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교수들이 있긴 해도 적어요.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교수들이 더 늘어나야 해요. 근래 우리나라는 각 분야에서 잠재력을 키워 세계의 벽을 잇따로 깨고 있어요. 가깝게는 동계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고 있는 선수들을 보세요. 쉽게 말하자면 학문 분야에서도 그처럼 '벽'을 깨야 한다는 거지요.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발전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절치부심하는 개혁이 필요해요. (대학 구성원간)합의도 필요하고 지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수들 스스로 각성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포스텍 뿐 아니라 국내 모든 대학이 함께 노력할 때 학문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교수들, 국제경쟁력 갖춰야" 호봉제서 연봉제로 변환
하버드식 개혁모델 들여와 7년 내 정년보장 여부도 결정
정원 100% 입학사정관제로 뽑아 잠재력 높은 인재 선발 '대만족'
"지금 사회는 소통·유연성 필요해" 칼텍 등과 과학·인문 교류 모색도


_차등 연봉으로 교수들을 독려하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정부가 국립대도 성과연봉제를 하겠다고 했지만, 포스텍은 이미 시행하고 있어요. 같은 직급의 신임 교수들 사이에는 연봉 차이가 없지만 갈수록 연봉이 벌어져요. 같은 직급에서 많이 받는 스타교수와 뒤떨어지는 교수 사이에는 50% 정도의 연봉 격차가 있어요. 예컨대, 50대 중반 정교수급의 경우 많이 받는 사람은 2억원이 넘지만 실적이 떨어지는 교수는 1억원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업적에 따라 성과급도 지급하고 있어요. 1,000만원도 안 되는 성과급 교수가 있는가 하면 1억원이 넘는 교수들도 적지 않아요."

_교수들을 돈으로 경쟁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 성과연봉제에는 양면이 있어요. 교수 사회의 화합을 해치고 경쟁과 함께 퇴임 후 갈등도 유발하는 측면도 있어요. 하지만 이 부분 역시 하나의 세계적인 고등교육계 의 흐름이라고 봐요. 교수 사회도 결국 시장에 노출되어 있어요. 글로벌 스탠더드네 맞춰야 하는 이유이지요. 호봉제를 연봉제로 바꿨어요. 1년 단위로 교수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에 3년간의 성과를 갖고 연봉을 정하고 있어요. 매년 좋은 연구 실적을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_교수 개혁 방안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능한 빠른 시간에 큰 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평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교수로 임용된 지 7년 이내에 정년 보장 여부를 학교에서 결정해주는 것이 맞다고 봤어요. 그래야 정년보장 심사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껏 자기 학문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요. 그러려면 그 기간 내에 잠재력을 발현할 수 있는 지원도 해줘야 한다고 봐요. 이번 포스텍 교수개혁 방안은 능력 없는 교수를 퇴출하는 방법이라기 보다는 교수 지원을 충분히 해 빠른 시간 내에 대(大)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그래야 경쟁력 있는 교수진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_교수들과 사전 논의는 있었나요.

"학내 공청회 등을 통해 나름의 모델을 채택한 것입니다. 하버드대가 시행하고 있는 교수 개혁 모델과 유사한 안이 채택됐어요. 교수들과 합의했고 이사회를 통과했지요. 3월부터 시행합니다."

<포스텍이 최근 발표한 교수 개혁 방안의 골격은 능력없는 교수의 완전 퇴출이다. 교수 임용 이후 7년 이내에 부교수 심사에서 탈락하거나, 부교수가 정년 심사에서 탈락할 경우 재임용을 금지한 것이다>

_재임용에서 탈락할 교수 비율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나요.

"탈락하는 교수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포스텍은 스탠퍼드식의 재임용 시스템을 채택할 생각입니다. 스탠퍼드대는 교수를 신중하게 초빙해 정년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주고 있어요. 물론 연구성과가 미흡하면 퇴출되지요. 실제로 정년보장 심사에서 탈락하는 비율은 20~30% 정도 됩니다. 포스텍도 스탠포드 방식으로 신중하게 교수를 뽑을 작정이에요. 재임용 탈락보다는, 노력하는 모든 교수들이 테뉴어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에요."

_올해 입학사정관제로 뽑힌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인가요.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정원의 100%를 뽑았어요. 전문입학사정관이 서류평가 와 면접평가, 잠재력 평가를 했어요. 결과는 대만족이에요. 좋은 학생들이 들어왔어요. 이공분야에서 경쟁력이 있을 뿐 아니라 학업성취도도 높은 학생들, 의욕이 많은 학생들이 합격했어요. 수학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걸러내는 효과도 있었어요. 최소한의 커트라인도 적용했습니다. 학원을 전전했다든지, 아니면 이해력이 떨어지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자기주도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배제됐어요. 이공계 분야에 대한 남다른 의지와 애정, 비전을 가진 학생을 뽑으려고 한 것이지요."

_입학사정관제가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로 들립니다.

"학생들에게 일단 요구되는 것은 학습능력입니다. 대학 수학능력이지요. 하지만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을 뽑은 게 소득이었다고 봐요. 입학사정관제가 아니었다면 합격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15% 정도 붙었어요. 성적은 다소 뒤처졌지만, 대학 수학능력은 충분히 갖춘 경우이지요."

_고교 학생부를 신뢰하시나요.

"지금 고교를 모니터링 하고 있어요. 학교에서 학생부가 얼마나 정확히 학생들의 실력과 생활을 반영하고 있지를 파악하자는 의도라고 보면 돼요. 입학사정관들이 직접 고교를 찾아 일종의 실사도 하고 있어요. 수학과 과학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학교 측이 한다면, 이런 부분들도 입학 전형에 반영할 생각이에요. 이런 절차들이 잘만 이뤄진다면 사교육 시장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단순히 내신이나 수능 성적만 올려서 대학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포스텍은 사절 입니다."

_이공계열 특성화 대학 출신의 한계가 많이 지적되곤 합니다.

"포스텍이 그동안 철저히 이공분야 전문가적 소양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요구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커리큘럼도 여기에 맞추고 있어요. 사회는 과학기술 분야 뿐만 아니라 전 영역에서 리더가 되도록 요구할 정도로 급변 추세이지요.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능력 외에도 여러 학문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유연성, 또 인문사회에 대한 이해 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여기에 맞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를 대대적으로 보강하고 있어요. 미국 칼텍의 경우 300명 교수 중 60명 정도가 인문사회분야 전임교수지만, 포스텍은 250명 교수 중 10명에 불과해요. 4% 정도 밖에 안되는데, 단기간에 10% 수준으로 끌어올릴 겁니다. 인문사회학을 리드할 수 있는 인문사회학부장도 물색하고 있어요. 칼텍, 한동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과 연계한 과학기술-인문사회 교류도 활발합니다."

<백 총장은 요즘 과학과 인문사회와의 소통에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예종 교수들이 포스텍에서 '예술의 산책'이라는 강의를 하고 있고, 포스텍 교수들은 한예종에서 '과학의 산책'이라는 강좌를 열고 있는데 두 강좌 모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_졸업 후 의학전문대학원 등 다른 분야로의 진로를 생각하는 이공계열 학생들을 어떻게 봐야 하나요.

"의대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굳이 포스텍에 지원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 포스텍 졸업생이 의학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다면 반대할 생각은 없으나, 진료 의사가 되어 가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이공 분야의 미래는 밝습니다. 보다 넓은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요."

입력시간 : 2010/02/23 23:14:37  수정시간 : 2010/02/24 21:02:47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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