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교육및강의 2009. 2. 6. 11:02
기자 사회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실화가 있다. 아마 1960~70년대의 일이지 싶다. 옛날에는 서울 창경궁(창경원)에 동물원(83년 경기도 과천의 서울대공원으로 이전)이 있었다. 창경원 시절의 동물원 취재는 동대문경찰서 출입기자들이 담당했다. 예나 지금이나 기자들은 기삿거리가 없을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큰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중요 출입처이던 동물원마저 조용해서 다들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한 신문사 기자가 특종을 터뜨렸다. ‘창경원의 암 코끼리 한 마리가 임신했다’는 뉴스였다. ‘코끼리 임신사건’을 낙종한 동대문서 출입기자들이 헐레벌떡 창경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수의사마저 “임신 여부를 알 수 없다”며 난감해했다. 더구나 코끼리의 임신 기간은 무려 650일. 웬만큼 시일이 흐르지 않고서는 임신한 티도 나지 않는다. 분명히 거짓 기사인 것은 같은데 딱히 반박할 방법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얘기다.

 사람의 회임(懷妊) 기간은 280일로 코끼리보다는 짧지만 포유류 중에서는 꽤 긴 축이다. 더구나 사람은 태어난 뒤에도 또 다른 회임 기간을 보낸다. 바로 교육이다. 초·중·고교를 거쳐 다섯 중 넷꼴로 대학교육까지 받는다. 여기에 각종 직무교육·재교육이 있고 전국 지자체마다 노인대학까지 있으니 가히 평생이 회임 기간이라 할 만하다. 주축은 물론 의무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성장기의 공교육이다.

덕성여중 김영숙 교장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본지 2월 4일자 1면, 5일자 3면)을 보고 나도 감동받았다. 나는 사교육을 추방할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공교육을 보완하는 공로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가 지나쳐 아예 공교육을 대체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세상에,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11시 퇴근한다니. 교단에 김 교장 같은 분만 계시다면 누가 학원과외에 목을 매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 모든 교사가 김 교장 같기를 바라는 마음속에 숨은 얄팍한 이기심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엄연한 교육 주체 중 하나인 학부모는 할 일이 없는가. 나는 학부모가 김 교장이 들이는 노력의 10분의 1이라도 가정교육에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교육이라 해서 거창하게 여길 것은 없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눈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태도, 이 두 가지만 염두에 두면 충분하다고 본다.

한 대학이사장이 전해준 일화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아파트 주차장에 내려갔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남자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이웃 남자는 새 외제 승용차가 주차된 것을 보고는 “저 자식은 돈이 어디서 나서 새 차로 바꿨나”라고 내뱉었다. 이야기를 전한 이사장은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는 ‘새 차 사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리지 않았겠는가”라고 개탄했다. 공감한다. 정부가 2013년까지 95억3000만원을 투입해 국민경제교육을 한다는데, 이런 가정교육 아래서는 95억 아니라 9500억원을 쏟아부어도 말짱 헛일이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저자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씨의 아버지는 달랐다. 그는 어린 시절의 한비야 등 자녀들에게 지구의를 선물하면서 “이 좁은 한반도에 머물지 말고 넓디넓은 세계로 나가 활약해라”고 일러주었다. 한비야씨 형제들은 나라 이름, 수도 이름 맞히기 놀이를 즐기면서 꿈을 키웠다.

초등학교 저학년 담당교사들은 “아이의 부모를 만나보면 어쩌면 저렇게 같을까 싶을 정도로 말투, 행동, 예절바름 여부가 꼭 닮아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가정교육은 누가 대행해줄 수도 없는 ‘사교육 무풍지대’다. 증오를 심느냐 사랑을 심느냐가 무심코 던진 부모의 한마디로 갈릴 수 있다. 공교육·사교육 논란 속에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왠지 퇴색돼 가는 느낌이 들어 하는 말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중앙일보 2009.1.6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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