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교육및강의 2009. 7. 13. 18:54
대학교수의 가장 큰 권리는 정년보장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30대에 조교수로 처음 임명받은 후에 10년 정도 지나 정교수가 되면서 40대 중반에는 정년을 보장받게 된다. 그후 65세까지 맘놓고 일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니 기업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꿈 같은 이야기다.

대학에 우수한 사람을 유치하기 위해, 이런저런 압력을 물리치며 스스로의 관심 분야에 매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이 정년보장이다. 그러나 불성실한 교수를 위한 쓸데없는 제도, 심지어는 교수를 불성실하게 만들고 교수의 업적을 오히려 저하시키는 불필요한 제도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사실 기업 시각으로 보면 대학은 대단히 비능률적이다. 그러나 대학은 생산현장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같은 것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지휘자도 없이 즉흥연주를 곁들이는 재즈악단이나 혹은 흥에 따라 추임새를 넣는 판소리 같은 것이기에 정년보장을 통한 `자유`는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수백 년 역사의 서구 대학들이 정년보장을 굳건히 지켜 오고 있는 사실에서 이 제도의 효용성은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처럼 `대학교수=정년보장`일 필요는 없다.

이 제도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교수 확보에 사활이 걸린 소위 연구중심 대학들에 특히 필요한 것으로, 실제로 미국의 경우 4년제 대학에 근무하고 있는 교수 120만명 중 단지 25%만이 정년보장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제도를 시행하는 대학의 경우 정년보장 심사를 통과하는 비율은 평균적으로 60% 정도며 아주 어려운 대학은 20% 미만이다. 우리 대학들과는 차이가 크다.

그리고 정년보장이 대학교수에 대한 모든 평가의 끝이어서는 안 된다. 물론 정년보장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교수로 하여금 스스로의 교육과 연구를 돌아보면서 좀 더 생산적인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학이 정기적으로 교수의 업적을 평가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년보장이 봉급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경쟁 없는 대학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우리의 대학들이 정년보장을 통한 자유를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수반되는 책무도 이행해야 한다.

[울산대 총장 = 김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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