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교육및강의 2009. 5. 21. 15:52
다음은 김 총장과의 문답.

-‘공교육 강화’다 ‘사교육 조장’이다 말들이 많다. 최근 교육계 논란에 대해 어떻게 보나.

▶사실 할 말이 많다. 그러나 아끼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한 개인의 인격이 형성되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고교 졸업과 함께 자아와 미래에 대한 판단이 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입시 때문이다. 만병의 근원이 고교평준화라 본다. 평준화가 안돼 있는데 돼 있는 것을 전제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 잘못이다. 관련 자료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분석된 자료를 토대로 토론을 해야 한다. 자료를 안 내놓으니까 각자 이념에 근거해 형평성, 수월성 등 공허한 주장만을 외치는 것이다. 객관적 자료를 놓고 우리가 무엇을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냐를 풀어야 한다. 공교육, 사교육 얘기하지만 용어의 정의부터 틀린 것이다. 공교육은 공립학교 교육을, 사교육은 사립학교 교육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교평준화를 통해 사립을 모두 공립화시켜버렸다. 미국의 경우, 공립학교 교육이 질이 떨어지고 제대로 역할 못하는 게 문제가 돼 왔고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공립학교 폐쇄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립학교를 공립화시켜서 학교를 통째로 망가뜨려버렸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학교의 교장과 교사가 열정을 갖고 노력하는 학교가 희망이 보인다. 동기 부여를 위해서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돈만 말하는 게 아니다. 본인이 원하는 학생들을 뽑아서 잘 가르쳐서 명문을 만들고 좋은 제자들을 기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인센티브다. 지금은 학생도 학교를, 학교도 학생을 선택 못하는데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제가 과거에 누렸던 사제간의 사랑과 존경이 쉽게 나올 수 있겠나.

-고입제도부터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관훈포럼에서도 일부 이야기를 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께도 강력히 얘기했는데 너무 과격하다고 기록에서 빼라고 하더라. 고교평준화는 도입 당시, 정책 의제 등장부터 채택까지 단 3개월밖에 안 걸린 것이다. 충분한 검토가 안 됐다. 고교평준화로 가장 덕을 본 학교가 부실ㆍ비리 사학들이다. 시장 논리에 맡겨뒀으면 일찌감치 도태됐을 학교들인데 학생들 나눠주고 교사 인건비 다 대주며 보존시켜준 셈이다. 교사들이 열정을 잃고 내가 편한 길을 찾게 돼 전교조 등 결사체를 만들어 자기 이익 보호를 위해 나선 것도 고교평준화의 부작용이다.

-대학자율화와 관련해 찬반양론이 있다. 연세대는 2012학년도 수시모집부터 대학별 고사만으로 합격자를 가리는 전형을 도입한다고 했다. 일부 마찰도 예상되는데 어떻게 풀어나갈 계획인가.

▶ 대학별고사 실시는 2012년 자율화를 전제로 얘기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얼마 전 3불에 대해 ‘2012년 이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이라는 방침을 내놓은 터라 지금 뭐라 딱 잘라 얘기하기는 힘들다. 상황을 주시하며 여러가지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다만, 입시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과 예측성이다. 최근 학교 입학처를 통해 고등학교 진학교사 1151명 대상으로 조사했다. 3불 가운데 가장 빨리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본고사 금지가 가장 많이 꼽혔다.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입시 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단순화다. 본고사가 됐든 수능이나 내신이 됐든 전형 요소와 방법을 최대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교육 시장이 활개치는 이유는 입시 전형 요소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다 잘해야 된다. 학생부, 교과영역, 비교과영역, 수능, 논술과 면접까지 너무 많다. 한 가지만 잘해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극소수다. 이것이 안 되면 저것을, 저것이 안 되면 다른 것을 해야 하니 결론적으로 모든 것을 다 준비해야 한다. 학생부만 갖고 선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교평준화가 안돼 있고 고교의 특성을 반영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또 너무 학생부 중심으로 가는 것은 어려서부터 친구와 경쟁해서 이기는 법만 가르치는 것이다. 대학별고사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화다. 지금으로선 대학별고사가 입시 단순화를 위한 최상의 선택이다. 설문조사에서 증명됐든 3불에서 고교등급제를 깨는 것보다는 본고사를 깨는 게 쉽다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 확대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 보조적인 수단은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취지는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입시와 관련해 잠재력이나 창의성보다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더 중시한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카이스트나 포스텍은 500명 정도로 정원이 얼마 안 된다. 심층면접이 가능하다. 수천명을 매년 뽑아야 하는데 대학에는 적용되기 힘들다. 얼마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말씀드렸다. 직설적으로 세게 말씀드리지는 못했다. 입학사정관제를 이 정도 끌고 나가려면 입시와 사교육 문제는 너무 조급하게 결과를 보려고 하지 말고 차분하게 분석부터 해서 풀어야 한다고만 말했다. 교과부 장관 등은 제 생각을 알 것이다. 대교협 회장도 적극적으로 공감하셨다.

-연세대에서는 어떻게 실시할 것인가.

▶우리도 2010학년도 입시에서 정원의 15% 수준에서 적용해본 뒤 향후 결과에 대한 평가를 잘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뽑힌 학생들에 대한 분석이다. 결과를 바로 반영해 나쁘다고 판단되면 줄이고 좋다고 판단되면 늘릴 것이다.

-얼마 전 약학대학 신설 계획을 발표했는데.

▶발표한 게 아니라 관훈토론회에서 질문이 나와서 인정한 것이다. 송도캠퍼스에 의생명연구단지가 들어선다. 미국의 MD앤더슨의 신약개발연구소도 들어온다. 연구인력이 있어야 한다. 의생명학문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인천에 약대가 한 군데도 없다는 이유도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약사를 늘려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 약대 정원은 1100여 명으로 고정돼 있어 그간 공급 부족이 있었다. 의사와의 직종 간 균형을 놓고 볼 때도 맞지 않았다. 더욱이 약대 6년제 전환으로 2년간 약사 배출이 안 된다. 약대 신설은 꼭 필요하다.

-지난 2005년 창립 120주년을 맞아 발표한 ‘연세비전 2020’의 진행 상황과 향후 목표는.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일부 분야에서는 수년 내 목표치를 이미 초과 달성했다.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실력 있는 교원 채용을 늘려 현재(이하 2008학년도 기준) 31.89명인 교수당 학생 수를 2011년까지 30명 미만으로 떨어뜨리는 한편 전임교원 강좌비율은 70%선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8.45%에 불과한 외국인 교원 비율을 2011년 11% 수준으로, 영어 강의 교과목 비율을 현행 21.5%에서 35%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5년 안에 5개 분야를 특성화해 세계 10위권에 진입시킨다는 ‘Global 5-5-10’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까지 11명인 ‘언더우드 교수’(연봉 외 연간 3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핵심연구 인력)을 40명 선으로 끌어올리고 2400억원 규모인 교외연구비도 2011년 3200억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정리=임희윤 기자/imi@heraldm.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m.com
posted by wizysl
: